[뉴스케이프 강우영 기자]

5일 오후 6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규탄하고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제8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김한주 기자)

[뉴스케이프=강우영 기자] 정치인은 없었다. 집회 때마다 따라오던 노동계 깃발도 없었다. 10월 5일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 촛불집회는 오롯이 시민들만 있었다. 

대검찰청 앞 도로는 시민들이 손에 든 촛불과 개혁을 외치는 피켓의 물결이었다. 서초역 사거리를 중심으로 검찰청, 서리풀터널, 예술의 전당, 그리고 교대역 방면 등 사방을 가득 채운 것은 시민들이 바라는 ‘검찰 개혁’의 열망이었다. 

시민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을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쳤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촛불 집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보수단체의 상징처럼 여겼던 태극기가 피켓으로 제작돼 검찰 개혁 안에서 흩날렸다. 월드컵 경기에서 보았던 대형 태극기가 시민들의 손길을 거쳐 대검찰청 앞을 지나 서초역으로 물결치며 흘러갔다. 보수 단체 집회의 전유물로 여겼던 태극기가 이제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피켓을 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즐거웠다. 소원을 빌 때 사용하려던 딸의 세례식 양초를 가지고 나온 부부는 촛불이 꺼질까 두 손으로 초를 가렸다. 팔짱을 낀 연인은 다음 데이트는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하자고 약속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40대 직장동료들은 가수 이은미의 공연에 앵콜을 외쳤다. 시민들의 표정엔 비정함은 보이지 않았다.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겼다. 

미국과 독일, 호주, 중국 등 25개국 해외동포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했다. 단상에 오른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회 이기자 회장 “우리도 늘 조국을 사랑한다. 이기자”라고 외치고 내려갔다. 그 먼 길을 달려와 단 두 마디를 한 그에게 시민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고 그러다 웃었고 곧이어 환호를 보냈다. 말은 짧았지만 힘은 강했다.

100만 명이 왔다느니 200만 명이 왔다느니 정치권이 숫자 싸움을 벌였다. 시민들은 숫자는 세지 말자고 했다. 그게 뭐 대수냐고 했다. 숫자와 상관없이 서초역을 중심으로 네 방향 모두 촛불로 도로를 가득 메운 건 사실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람이 몰리니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은 가야 했다.

인근 사랑의 교회가 시민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했다. 서초역의 한 주유소도 지난 집회에 이어 이날도 화장실을 개방했다. 화장실 안에 놓인 화장지는 시민이 기부했다. 한 음식점은 식당 앞에 생수를 놓고 시민들의 아픈 목을 적셔주었다.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 회원 67명이 기부금을 모아 방석 1만6천 장을 차량에 싣고 서초역으로 달려갔다. 서초역 5번 출구에 세워진 임시화장실에는 급할 때 사용하라며 누군가가 걸어 놓은 생리대가 담긴 봉투가 걸려 있었다. 장시간 집회에 급격히 체력이 고갈 될 것을 우려해 노인들에게 사탕과 떡을 나눠주는 시민도 있었다.

미주 한인 주부들의 커뮤니티 모임인 ‘미씨USA’는 검찰 개혁 광고 모금 운동을 시작한 지 8시간 만에 1만 불을 모았다. 광고는 강남과 신촌, 노량진에 한 달 동안 게재된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사타파TV 유튜브 채널에서는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후원금이 쏟아졌다. 

"워메! 석렬이 땀시 잠이 안와분당께" 광주에서 올라온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강우영 기자)

이들이 만들어 낸 촛불집회는 한마당의 축제였다. 해학과 풍자가 넘쳤다. ‘10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윤석열 너 때문에 다시 핀다. 암 걸리면 니가 책임져라’, ‘공수처를 들이셔야 합니다’, ‘워메 석열이 땀시 잠이 안와분당께’ 드라마 대사 패러디와 지역 발 사투리가 웃음보를 자극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위원회들도 우후죽순 생겼다. ‘조국어깨처짐방지대책위원회’, ‘일기장변태퇴치위원회’, ‘낯가림협회(혼자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을 위한 모임), 그나마 ‘미남보존협회’만 조금 알려진 모임이다. 이들 단체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시민일 뿐이다.

이들이 원하는 개혁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학의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라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을 재수사하라는 것이다. 세월호를 왜 지금처럼 수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국회의원 자녀가 마약을 밀수해도 음주 운전자를 바꿔치기 해도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는 정치검찰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입시에 사용하지도 않은 표창장을 그것도 공소장 내용을 바꿔가면서 무리하게 기소한 특수수사팀의 무능함은 차지하고라도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기득권 세력이 감추고자 하는 죄를 따져 물으라는 것이다. 지금 이들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그렇게 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노회한 검찰 출신 정치인은 이런 시민들에게 “조폭들끼리 서초동에서 단합대회를 한다”고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해당 언론 보도에 자신을 60대라고 소개한 네티즌은 “평생 교통딱지 떼본 거 말고는 법을 어긴 적이 없는데 집회에 참석했더니 하루아침에 조폭이 되어 있었다”며 허탈해 했다. 

아줌마 부대가 다시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절대 권력이 어떻게 한 가정을 극렬하게 괴롭히고 파괴하는 지 지켜보고 이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이날의 촛불은 정당이 주도하거나 종교 단체가 불러 세우지 않았다. 오롯이 시민이 만들어 간 새로운 형태의 촛불 문화제인 것이다. 오롯이 시민이 만들어 간 2019년 새로운 시민 혁명이다.

보수 단체 집회의 전유물로 여겼던 태극기가 5일 서초동 촛불 문화제에서도 등장했다. (사진=박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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