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586은 21세기 한국사회 최고의 꿀직업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현직 대통령과 재벌 2세 이래서 닮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아이돌 연예인과 직업적 운동선수는 되기도 어렵고, 하기도 어려운 직업이다. 일단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데뷔가 가능하다. 데뷔한 후에도 데뷔 이전에 못잖은, 때로는 그 이상의 지독한 훈련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따라야만 아이돌은 높은 인기를, 프로 스포츠 선수는 우수한 기량을 꾸준히 유지해나갈 수 있다.

남한사회에서 재벌가 자식과 대통령은 되기는 어려워도 하기는 쉬운 대표적 직업들이다. 재벌의 피붙이로 태어나기가 힘들 뿐이지, 재벌의 아들딸로 한번 태어난 다음에는 그냥 하루 세 끼 밥만 잘 먹어도 평생 동안 부와 명예를 만끽할 수가 있다.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을 차례로 거치며 대통령이란 직업 또한 되는 게 극단적으로 어려울 따름이지, 하기는 엄청 손쉬운 직업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홀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으로 국정을 대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통의 여느 직장인들과는 달리 쉬고 싶을 때 쉬고, 읽고 싶은 책 실컷 읽는 게 그가 하는 업무의 사실상 전부다. 다른 모든 직역들에서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효율적 일처리가 벅찬 까닭에 이제는 인공지능(AI)마저 동원돼야 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직업은 영혼 없는 막대기를 꽂아놔도 무탈(?)하게 돌아가는 “대단히 저급하고 일차원적인 저부가가치 단순직종”이 돼버린 셈이다.

대통령이 정작 고된 직업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청와대를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의 모든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최근의 혼탁하고 요동치는 정국 흐름을 감안하면 현직일 때는 행복했다가, 전직이 되면 불행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운명적 특성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년시절의 순수함은 ‘생애주기’의 일부일 뿐

학생운동권 출신의 586 엘리트들은 권리는 누려도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삶을 60년 가까이 살아왔다. 따라서 그들에게 사회적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이미지는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2」의 표지)재벌가문의 일원이나 현직 대통령처럼 되기는 어려워도, 하기는 누워서 떡 먹기인 직업이 대한민국에서 최근 20년 사이에 한 개 더 추가로 등장했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그의 신간인 「강남좌파2(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도덕적 우월감’의 타성에 중독돼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 운동권 586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아쉬웠던 대목은 강준만 교수가 큰소리로 질타해야 마땅할 지점에서마저 조심스럽게 지적하는 단계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운동권 586, 범위를 더욱 특정하자면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의 출세하고 성공한 진보 엘리트들은 도덕성과 윤리감각에서 2019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대한민국 하위 10프로, 아니 1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강조하겠다. 상위가 아니라 하위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저지르는 비행과 범죄는 그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영위하면서, 즉 돈벌이를 하면서 비로소 싹트기 마련이다. 당장 구약성서의 창세기만 보시라. 카인은 여호와가 자신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해주지 않는 데 분노해 친동생 아벨을 살해했다.

청년은 왜 순수할까? 당장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덕분이다. 권리를 누리기는 해도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덕택이다. 젊은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대가로 기성세대는 부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위장전입도 불사해야 하고, 불법 사모펀드도 조성해야 하고, 세금도 포탈해야 하고, 부동산 투기도 일삼아야 한다.

이게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를 막론하고 특권과 반칙에 찌든 남한 전체 상류계급 층위에서 자행돼온 부패라면, 인민대중 차원에서도 작고 자잘한 타락들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졌다. 공장 노동자 혹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 부모들이 의류공장에서 몰래 가져온 옷을 입거나, 음식점에서 은밀히 빼돌린 음식물을 먹었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분명 공유하고 있을 터이다.

586, 타락할 기회만 생기면 즉시 타락해

서론이 길었다. 강준만 교수가 강남좌파의 전위대로 포진시킨 586 세대의 운동권 엘리트들은 도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들은 자기 손으로 굳이 힘들게 돈을 벌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단체로 환갑잔치 치를 나이에 다다른 오늘날까지도.

강준만은 출세하고 성공한 586 엘리트들이 이끌어온 한국정치가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재생산했다고 비판했다. 본디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는 경제의 딸이고, 민생의 아들이다. 한마디로, 자기 손으로 힘들게 돈을 벌어야 가슴으로 진정성 있게 고민할 수 있는 과제이다.

그러므로 직접 어렵게 돈을 벌어본 경험도, 필요도 없었을 586 운동권 엘리트들에게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건 내륙국가인 몽골이나 헝가리 국민들을 향해 해양오염의 심각성에 경각심을 가지라고 촉구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는 출세하고 성공한 586 운동권 엘리트들이 남한의 제도정치권에서 전부 사라져야 한국정치의 중심적 화두로 그제야 부각될 수 있다. 이를테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이인영 의원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서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해야만 나날이 빈익빈되는 구로구와 거침없이 부익부하는 강남구 간의 지독한 격차가 구로구 유권자들 사이에 중요한 주제로 떠오를 수가 있다.

토끼와 염소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토끼와 염소에게는 생리적으로 고기를 소화시킬 능력이 없는 데 있다. 그러니 굶어죽지 않으려면 싫든 좋든 허구한 날 풀만 뜯어먹어야 한다. 사자와 이리가 성격이 모질고 잔인해 육식을 즐기는 게 아니다. 이 들짐승들은 다른 생명체의 피를 마시고 살을 취해야 생존하는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자와 이리가 주제넘게 생명존중 사상을 발휘해 풀만 먹는다고 가정해보시라. 며칠 못가 힘없이 푹 쓰러진다.

출세하고 성공한 운동권 586 세대의 근거 없고 오만방자한 도덕적 우월감은 자신의 손으로 땀 흘려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특이하고 복 받은 그들만의 독특한 정치사회적 위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부패하지 않아도, 타락하지 않아도, 결정적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고 치열하게 노동하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은 풍족한 의식주 생활이 가능했다.

어떤 586 엘리트들은 자기들도 나름 열심히 일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허나 일부 이른바 ‘빠들’을 제외한 대다수 평범한 인민대중은 입신양명한 586들이 주로 취업하는 직종인 국회의원이, 청와대 참모진이, 공기업 사장과 관변단체 감사가, 그리고 각종 낙하산 자리들과 이런저런 철밥통 꿀보직들이 피와 땀과 눈물이 요구되는 직업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방금 열거한 이 직업들은 되기가 어려울 뿐, 된 다음에는 막대기를 꽂아놔도 상관없는 하늘 아래 둘도 없을 일자리들이다.

강준만은 김성근의 “아닐까 싶어요~” 말투에서 벗어나야

필자는 강준만 교수가 「강남좌파2」에서 너무나 대담한 내용을 너무나 소심하게 표현해놨다고 평가하고 싶다. 무엇보다 불만족스러운 건 천하의 강준만마저 학생운동권 출신의 출세하고 성공한 강남좌파 주류 진보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강준만에게는 미안한 얘기겠으나 운동권 586 엘리트들은 도덕적이고 싶어서 도덕적이었던 게 아니다. 단지, 타락하고 부패할 기회를 일찌감치 만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도덕적일 수밖에, 그렇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도덕성은 자발적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이식되고 주입된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도덕성이었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는 ‘내로남불’ 근성은 출세하고 성공한 강남좌파 586들에게 공통적으로 잠재된 일반적 본성이자 보편적 본능임을 강준만은 애써 모른 척한다.

부패하고 타락하면 엄청난 이권을 쥘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운동권 엘리트들은 저들이 젊었을 적에 맹렬히 공격했던 공안 엘리트, 군부 엘리트, 관료 엘리트, 자본 엘리트, 친미친일 엘리트 뺨치게 부정하고 불의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았다. 단적으로, 요즘 문제 되고 있는 태양광 발전사업 추문과 청와대 특감반 의혹은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이나 또는 옛 국정원 간부들이 주도해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하나같이 왕년에 학생운동권에서 이름깨나 날렸던 인물들이 핵심 주역으로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불미스러운 사태들이다.

필자의 586 엘리트 비판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다. 왜냐? 나도 내가 진실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녀석인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탓이다. 까놓고 말해서 나도 부패하고 타락할 기회가 없어 아직 부패하고 타락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고로 강준만 교수는 “쟤들은 나쁜 놈들이 아닐까?” 하는 식의 쩨쩨하게 간보는 어법은 이제 제발 그만뒀으면 좋겠다. 지금은 파퓰리즘의 시대이다. 기면 기이고, 아니면 아니어야 폭넓고 폭발적인 대중의 사랑과 지지와 믿음을 얻는다. 명징하게 맺고 끊는 단호한 직설화법의 「강남좌파3」을 시중서점에서 조만간 신간으로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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