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케이프 하태균 기자]

런던정경대학 교수는 “미국 세기가 끝나가고 있다(The American century is coming to an end)”면서 “역사적 동맹국들 간의 글로벌 관계에 균열이 생겼고, 나토가 그 중심에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 나토 로고/위키피디아)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에 중동지역에 병력을 배치하고 그곳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혁명수비대의 정예군인 쿠드스군(Quds Force)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Qassem Soleimani)를 살해한 지 5일 만에 미국과 테헤란을 전쟁 직전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조치로서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NATO에 “중동 정세 전개 과정에 훨씬 더 많이 관여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솔레이마니 살해를 지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이라크 내 아인 알 아사드(Ein Al- Asad) 공군기지와 에르빌(Erbil)에 기지 두 곳을 미사일 보복 공격을 한 후, 나토 29개 회원국 동맹에 중동지역에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이 지역의 “분쟁 방지”역할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에 대한 오랫동안의 비판과 동맹국들에게 동맹국들의 방위 주둔비를 더 지불하라고 촉구한 것 등을 고려해보면, 트럼프의 이 같은 요구는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수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Jens Stoltenberg) 나토 사무총장은 당초 대서양 동맹이 중동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트럼프의 요청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나토가 이 지역에 전투 병력을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지역군이 테러와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해, 적극적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나토는 현재 이라크에 4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 세력인 이른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의 부활을 막기 위해, 이라크 군대를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아왔다. 그러나 솔레이마니가 살해된 직후 NATO는 그러한 비전투 임무의 훈련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에 중동 주둔을 확대하라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분석가들은 미국과 일부 나토 동맹국들 사이에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는 획기적인 합의를 포기하기로 한 미국의 일방적 결정에서 솔레이마니의 살해로 인해 동맹 존립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솔레이마니를 제거한다는 미국의 결정을 지지한 나토 동맹국은 없다. 터키는 공개적으로 말했을지 모르지만, 모든 동맹국들은 전략적으로 참담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09~2013년 사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워싱턴 대사를 지낸 이보 달더(Ivo Daalder)가 이 지역에 대한 개입을 크게 확대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최측근인 나토나 영국도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Quds Force) 사령관을 살해하기 위한 미국의 작전에 대해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솔레이마니의 사망으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단계적 축소(de-escalation)”를 요구했고, 터키는 “이 지역의 외국인 개입, 암살, 종파 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보 달더 현 시카고 국제문제 연구소 소장은 “현재의 위기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분열을 심화시켰고, 유럽 동맹국들이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미국과 거리를 둘 가능성을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에 중동지역 주둔을 강화하라고 요구한 것은 1949년 소련에 대한 방벽으로 창설된 동맹의 임무에 상당한 변화를 수반시키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NATO)에 더 많은 개입을 요구하면서, 미국은 독립적이며 중동석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의 입장은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기는 하다. 이제 미국은 셰일오일과 셰일가스(Shale Oil & gas)가 자국에서 생산, 자급자족이 되는 국가로 세계 제 1위의 석유 생산국 대열에 올라 있다. 중동 석유 의존도가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리투아니아의 라사 유크네비치에네 (Rasa Jukneviciene) 전 나토 대표단장은 “향후 안보분야에서 유럽 NATO 동맹국들에게 베일에 싸인 메시지”라고 특징지었다.

유크네비치에네는 “(미국의 중동석유가 필요 없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유럽인들에게 가장 먼저 전달되는 메시지”라며 “전략적 자주성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유럽은 깨달아야 한다”며, 유럽 국가들에게 국방비 지출을 늘리라고 촉구했다.

현재, 미국은 나토 예산의 약 70%를 기부하고 있으며, 2019년 나토 GDP의 약 3.4%가 동맹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나토의 안보 의제를 크게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2024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4%로 늘리라고 요구했으나 목표치는 그 절반인 2%로 정해졌다.

유크네비치에네는 “유럽은 이런저런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 대다수의 의견으로는 NATO가 그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브뤼셀의 싱크탱크인 ‘유럽의 친구들( Friends of Europe)’의 제이미 쉐어(Jamie Shea) 선임연구원은 “나토 회원국들은 중동 작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구를 나토를 지중해와 터키, 그리고 심지어 트럼프와도 더 관련이 있게 만들기 위한 개방”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맹국들이 공격을 받을 경우 서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동맹헌장 조항을 언급하며,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헌장 5조에 따라 나토 탈퇴나 모호성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면서 ”모든 위기는 기회(Every crisis is an opportunity)“라고 덧붙였다. 

동맹의 가치에 대한 불협화음 속에 일부 전문가들은 나토의 중동에 대한 다음 조치가 동맹의 미래에 결정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파와즈 A 게르헤스(Fawaz A Gerges)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동맹이 ‘전환기(transitional period)’로 전환될 것으로 관측하며, 회원국들은 미래의 자원을 어디에 배치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토 협력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언급하며 “미국 세기가 끝나가고 있다(The American century is coming to an end)”면서 “역사적 동맹국들 간의 글로벌 관계에 균열이 생겼고, 나토가 그 중심에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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