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11)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한니발의 아재 개그는 카르타고 병사들의 긴장감을 자신감으로 빠궈놓았다. 이미지는 유머모음집 「아재개그 레전드 500」의의 표지테렌티우스는 정신 못 차린 천방지축 사고뭉치 시절의 미누키우스의 재림이었다.

그는 파울루스에게 하루씩 번갈아가며 부대를 지휘하자고 요구했다. 파울루스가 파비우스의 선례를 따라 차라리 부대를 절반으로 나누는 방법을 선택했더라면 칸나이에서 로마군에게 닥친 전무후무한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파울루스는 자신과는 동명이인인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가 히틀러 총통의 자멸적인 무조건 사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가 30만 명의 부하 장병들을 스탈린그라드의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테렌티우스의 말도 안 되는 고집에 저항할 엄두를 감히 내지 못했다.

그래도 로마 측이 워낙 대병인 터라 카르타고 사람들은 오줌이 지릴 지경이었다. 기스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한니발과는 명목상 계급이 같았던 사내였다. 한니발과 함께 언덕에 올라간 기스코는 아군에 비해 두 배나 되는 적의 규모를 관찰하고는 혀를 내두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자 한니발은 느닷없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썰렁하기 그지없는 농담을 했다.

“저 많은 적병들 중에서 기스코란 이름을 가진 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실화인가?”

이 맥락 없는 아재 개그가 일행들의 긴장을 일시에 누그러뜨렸고, 한니발의 농담이 병사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면서 카르타고군은 적군의 압도적 크기로 말미암아 잠시 동안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이내 회복할 수 있었다.

“장군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다.”

병사들은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면서 총사령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기대감을 표현했다. 로마군이 아무리 많아도 한니발만 있으면 그들에게는 거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칸나에 전투는 포위 섬멸전의 모범사례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사관학교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정치사를 중심으로 그의 영웅전을 서술해놓은 까닭에 이 전투에 관해 지극히 간단히 설명만을 남겼다. 그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전투상황을 개략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한니발은 교전에 앞서서 로마군의 강점을 철저히 분석했다. 로마군 병사들이 밀집대형으로 밀고 들어올 때의 돌파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때의 기준으로는 육중한 전차들 수백 대가 동시에 돌격해오는 느낌이었으리라. 따라서 한니발로서는 로마군의 예봉을 무디게 할 방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는 지형과 날씨를 동시에 이용했다. 먼지가 많이 부는 지형을 선택한 다음 바람을 등진 위치에서 진을 친 것이다.

돌풍처럼 거세게 부는 맞바람을 이고 싸우는 처지가 된 로마군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체적으로 진격 방향을 수정해야만 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력력도 둔화됐을 뿐더러 진형 내부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함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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