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월터 리드 군병원으로 이송

[뉴스케이프 하태균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는 ‘피곤은 하지만 기분이 좋다“로 표현된다. 2일 오후, 대통령은 월터 리드 군 병원(Walter Reed military hospital)으로 보내졌다.(그래픽 : 뉴스케이프)만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2019) 감염 확진 사실을 본인 스스로 트위터에 알리고, 세계의 언론들은 미국 대통령의 감염 사실을 일제히 알리자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11월 대선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 등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그는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코로나19 감염 확진사실을 알린 대통령으로 자신의 의학적 질병 사실을 숨기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는 코로나 초기에는 일반 감기정도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 왔다. 물론 기저질환에 대해서는 끝내 밝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숨겨진 질병에 대해 알자지라 방송이 2일 보도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진단과 관련, 어떤 면에서는 시나리오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을 비밀로 한 것은 1919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변인은 2일 ‘가벼운 증상’이라며 ‘그는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자, 일반 대중은 여전히 대통령의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의 주치의는 2일 오후 “트럼프 대통령이 항체 혼합체(antibody cocktail)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히며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는 ‘피곤은 하지만 기분이 좋다“로 표현된다. 2일 오후, 대통령은 월터 리드 군 병원(Walter Reed military hospital)으로 보내졌다.

알자지라는 이어 지난 세기의 더욱 주목할 만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사례를 나열했다. 

* 우드르 윌슨(Woodrow Wilson)과 스페인 독감 

윌슨 전 대통령의 경우 1919년 4월 파리평화회의 참석차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독감에 걸렸다. 

역사학자들과 전기 작가들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그의 질병에 대한 세부사항을 밝혀냈지만, 윌슨 행정부는 당시 기자들에게 그가 파리 비(rain) 덕분에 단순히 감기로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윌슨은 그해 말 쇠약한 상태에서 뇌졸중을 겪었지만, 1921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했었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 척수성 소아마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았고, 휠체어와 목발을 사용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덜 알려진 것은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서 기록적인 4선에 도전하던 1944년 7월, 비밀리에 건강 상담을 받은 의사가 비밀 메모를 통해 다음 임기 말 전에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다고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프랭크 레이히(Frank Lahey) 박사는 2011년까지 “루즈벨트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임기를 마칠 수 있는 물리적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고 밝히고, “만약 그가 연임을 수락한다면, 누가 부통령인지에 대해 매우 심각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 권고의 결과로, 루즈벨트는 민주당 지도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헨리 월러스(Henry Wallace)대신에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으로 교체했다. 루즈벨트는 1945년 4번째 임기 중 82일 동안 뇌출혈로 사망했다.

*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 심각한 백혈병 ? 

1961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1963년에 암살될 때까지 케네디는 평생 동안 여러 가지 병을 앓았지만, 대부분의 질병은 사후 몇 년이 지나도록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케네디 전기 작가 로버트 달렉(Robert Dallek)은 대서양에서 “병든 어린 시절 이후 그는 심한 장 질환, 감염, 그리고 한동안 의사들이 생각했던 것은 백혈병이었다”고 적었다.

애디슨병은 물론 궤양과 대장염까지 앓아 스테로이드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했다. 그리고 케네디가 끔찍한 요통을 견뎌냈다는 것은 얼마 전부터 알려져 왔다.

백악관에 도착한 후 케네디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달렉은 케네디는 당선 다음 날 기자의 질문에 ‘이주 좋은 컨디션’이라 자신을 선언했고, “애디슨병 루머는 거짓이라고 일축했다”고 썼고, 이어 케네디의 건강 문제가 그의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암살되는 동안 간접적으로 케네디의 건강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는 댈러스를 지날 때 언제나 처럼 코르셋 같은 등받이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리 하비, Lee Harvey] 오스왈드(Oswald)의 첫 총알이 그의 목덜미를 명중시켰다. 그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등받이가 아니었다면, 두 번째 머리에 치명상을 입어,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증언했다. 

*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과 관상동맥 

1981년 3월 30일은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암살 시도의 표적이 된 운명의 날이었다. 

30년이 지나서야 대중은 레이건이 그 총격사건을 얼마나 가까이서 보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데이비드 게르겐(David Gergen) 백악관 대변인은 암살 기도 직후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자신의 힘으로 병원에 걸어 들어갔다”고 말했다. 

린 노프지거(Lyn Nofziger) 대통령보좌관은 “대통령이 의식이 있고, 안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다음날, 조지 HW 부시 부통령(아버지 부시, 후에 대통령)은 레이건을 방문 “그의 볼은 장미 빛이고 그는 건장해 보인다”고 말했다.

대중들이 듣지 못한 것은 일단 레이건이 병원 안 20피트 안으로 들어가자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팔에 안겨 쓰러졌고, 그를 간호한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레이건이 죽어가고 있다고 확신하거나 심지어 죽었다는 것이다.

로하이드 다운(Rawhide Down)의 저자 델 퀸틴 윌버(Del Quintin Wilber)는 2012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청중들에게 “의사는 그가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들 모두 레이건 대통령이 엄청난 관상동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는 그렇게 나빠 보였다”고 말했다.

윌버는 “70세인 레이건은 그날 같으면 혈액량의 거의 절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사람들에게 레이건의 생명이 분초를 다투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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