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 위한 개선 권고 등 결정

[뉴스케이프 박세준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25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하 박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 등을 결정했다.

이어서 서울시에는 이 사건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방안 및 2차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과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비서실 업무 관행 개선,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구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여성가족부 장관에게는 공공기관 종사자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모두 이수할 수 있도록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공공기관의 조직문화 등에 대한 상시 점검을 통해 지자체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예방활동을 충실히 할 것, 지자체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발생시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기구에서 조사하여 처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 실효성 있는 2차 피해 예방 및 대처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매뉴얼 등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상급기관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성희롱·성폭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성평등한 조직문화 정착을 위한 원칙을 천명하는 선언이나 입장표명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에 위와 같은 자율규제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30일 상임위원회에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시 시장 비서실 운용 관행, 박시장에 의한 성희롱 및 묵인·방조 여부,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절차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진정인 또는 피진정인(피조사자)의 사망 시 사건 처리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그러나 인권위 조사는 수사기관의 수사와 달리 피조사자에 대한 조치 뿐 아니라 피해자에게 필요한 구제조치를 비롯해 유사·동일한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관행 등의 개선에 주요한 목적이 있어 본 직권조사를 결정했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단 박시장 사망으로 인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성을 감안해 사실 여부는 좀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

인권위는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 비서 운용 관행에 대해서 비서업무의 특성은 그 업무를 수행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친밀성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공적관계가 아닌 사적관계의 친밀함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서실 직원들이 박시장과 피해자를 ’각별한 사이‘나 ’친밀한 관계‘로 인지하면서 이를 ’문제‘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나, 피해자 또한 비서 재직 당시 적극적으로 노동을 수행한 것도 비서 업무로 정당화돼 문제의 본질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서울시는 시장 비서실 데스크 비서에 20~30대 신입 여성 직원을 배치해 왔다. 이는 비서 직무는 젊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고정관념, 즉, 시장실 비서는 ‘서울시의 얼굴’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등 타인을 챙기고 보살피는 돌봄노동·감정노동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반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박시장의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성적 언동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및 박시장의 행위가 발생했을 당시 이를 피해자로부터 들었다거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고, 이와 같은 박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인권위는 피해자의 주장 외에 행위 발생 당시 이를 들었다는 참고인의 진술이 부재하거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입증 자료가 없는 경우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 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 위 인정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참고인들의 성희롱에 대한 묵인 방조 여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판단했으며 인권위는 서울시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서울시는 4월 사건 처리과정에서 일반적인 성폭력 형사사건 또는 두 사람간의 개인적 문제라고 인식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냈는 바, 이로 인해 비교적 잘 마련된 서울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성희롱’을 바라보는 관점을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에서 ‘고용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친밀성의 정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인지 여부로, ‘피해자/가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나 위계구조의 문제’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끝으로 인권위는 "고용, 정치 등 주요 영역에서의 성별격차는 여전하고, 성희롱에 대한 낮은 인식과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향후 인권위는 성희롱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 뿐 아니라 차별적 환경과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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