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과거를 지배하려는 자는 과거만 지배하게 된다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 「300」을 앞세워 과거를 지배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이라크의 미래를 정복하는 데는 실패했다.“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남한사회의 지식계급이 이념과 진영을 막론하고 유난히 인용하기 좋아하는 러시아 속담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목을 맸었고, 문재인 정권은 지난 정권이 남기고 간 캐비닛을 허구한 날 뒤진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는 건 맞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인 까닭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다른 시대는 어쩐지 몰라도 21세기 남한 땅에서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꼭 미래까지 지배하는 것만은 아닌 듯싶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벌써 만으로 2년 넘게 가슴에 수인번호 503호를 달고서 치욕스러운 옥살이를 계속하는 중이며, 문재인 대통령은 20세기의 과거사로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 이제는 19세기의 과거사까지도 탈탈 털 기세임에도 불구하고 KBS와 MBC와 YTN에 더하여 EBS마저 아우르는 사실상의 국영방송 네트워크가 총동원되어 부지런히 내보내는 별의별 내용과 형식의 친정부 홍보 프로그램들에 기대어 간신히 지지율을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기를 꾀한다는 점에서는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쏙 빼닮았다.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노력에 전력투구하다가 앞에서 되로 남고 뒤에서 말로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부분 역시 아예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전략은 좋은데 글쎄 선수들이…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의 전략이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던 건 아니다. 문제는 전략을 현장에서 수행하는 선수들에게 있었다.

박근혜가 국민들에게 영업하려고 시도한 과거는 1970년대의 농촌에서 농민들과 어울려 소탈하게 막걸리를 마시는 박정희의 이미지였다.

허나 농촌에서 농민들과 낯가림 없이 어울리는 박정희를 신성시한 박근혜 스스로는 농민들은 물론이고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도 만나주지 않았다. 더욱이 박근혜가 발탁한 고위 관료들의 무리에는 민중과 밝은 햇살 아래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대신에 강제로 끌고 온 여성들을 데리고 어둡고 은밀한 별장에서 주지육림에 빠진 파렴치한조차 있었다. 현재가 과거를 제대로 욕보인 대표적 경우다.

문재인 정권이 대중에게 주야장천으로 선전하는 자랑스러운 과거는 80년대 대학가의 좁고 낡은 자취방에서 깡소주를 마시며 민주주의를 목 놓아 부르는 더벅머리 대학생들이다.

그런데 허름한 자취방에서 해어진 추리닝 입고서 정의와 진실을 절규하던 열혈 대학생을 자신의 뿌리와 모태로 낭만적으로 이상화하는 문재인 정권의 현실은 정작 어떤가? 문재인 정권에서 청와대와 내각에 기용된 고관대작들의 상당수는 땅값 비싼 강남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권위주의적인 이팔 가르마에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다닌다. 80년대 무명의 백만 청년학도들이 그토록 저주하고 증오했던 부유하고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의 모습이 문재인 정권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강남좌파들을 통해 정확히 형상화된 셈이다. 현재가 과거를 확실하게 능멸한 전형적 사례다.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기를 바란다면 현재의 나 또는 우리와 과거의 나 혹은 우리 사이에서 튼튼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만한 생활상의 공통분모가 확고하게 있어야만 한다. 박근혜 정권도, 문재인 정권도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욕보이고,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능멸하니 과거를 열심히 지배하려고 들면 들수록 미래는 되레 더욱더 내 것이 아니게 되기 마련이다.

내로남불이 앗아간 백년전쟁의 꿈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모두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전략에 열중했다. 그러나 인민의 고통스러운 현재는 집권세력의 그러한 전략적 기획을 공허한 백일몽으로 만들어버렸다.인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빵과 쇼 두 가지 가운데 뭐라도 하나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야만 한다. 박근혜 정권은 빵도, 쇼도 국민들에게 보장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은 빵은 못 주었지만 쇼에는 대단히 능숙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의 쇼도 요즘에는 포르쉐 안에서 고급 카스테레오로 「임을 위한 행진곡」 들을지도 모를 위선적인 강남좌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힘없고 가난한 평범한 인민대중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감동도 주지 못하는 그들만의 물랑루즈가 되고 말았다.

인민을 위해서 빵도 못 만들어내고 쇼도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권력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다. 일관성이나 솔직함 중에 한 가지나마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을 차례로 거쳐온 21세기 한국정치에서 일관성과 솔직함을 찾기란 바다 없는 내륙국가 몽골에서 현대적인 초대형 조선소를 검색하는 것처럼 허황된 작업이 되고 말았다.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잘하듯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정치적 기획에서도 최소한의 펀더멘털은 필요하고, 이 펀더멘털은 과거의 나 또는 우리와 현재의 나 혹은 우리 간에 존재하는 뚜렷한 연속적 흐름이다.

비록 연출된 이미지일지언정 검소하게 막걸리 들이키던 서민적 풍모의 박정희와, 부르봉 왕조 치하의 프랑스 귀족처럼 호사스럽게 승마하는 정유라로부터 무슨 공분모를 발견할 수 있는가? 꾀죄죄한 교련복 차림으로 사랑도 이름도 남김 없이 짱돌 던지던 순수한 청년학도와 막대한 재개발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동네에서 본인 명의로 등기될 알짜배기 상가건물 열심히 물색했을 문재인 정부의 노회한 청와대 대변인 사이에서 어떤 공동의 지향성을 목도할 수가 있는가?

미래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지배하고 싶으신가? 그러면 무조건 현재를 착하게 살아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내로남불을 일삼으면서 과거를 지배하려고 애쓰는 짓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여 트위터를 끊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바람일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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