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케이프 전수영 기자]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밖은 여전히 컴컴한 암흑이다. 그냥 편하게 더 자고 싶다는 본능이 꿈틀거렸지만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한없이 게을러져 가는 습관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후다닥 샤워를 마쳤다.
양력 1월이지만 음력으로는 아직 12월이다. 빙어가 아닌 이상 입질을 기대하기 힘든 시기지만 그래도 바다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낚시 도구를 챙겨 나왔다. 여행 와서 편하게 쉬다 가면 그만인 것을 새벽부터 난리를 치고 말았다.
전날 밤 갈 곳을 못 정해 갈팡질팡하다가 고성군의 봉포항으로 정했다. 봉포항은 고성군 남단에 있는 작은 항으로 속초 시내에서 20분 정도만 가면 된다. 숙소에서 오가는 시간을 따져 정한 곳도 있지만 또 다른 추억이 크게 작용했다. 몇 년 전 3월 중순 새벽에 와서 일출 후 2시간가량 낚시해 문치가자미(도다리) 네 마리를 잡은 기억이 생생한 곳이었다.
시기적으로 문치가자미가 나오기에는 이른 시기이고 만약 나온다고 하더라도 금어기여서 놔줘야 했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봉포항으로 차를 몰았다.
봉포항 회센터 앞에 주차하고 주섬주섬 채비를 챙겨 바로 옆 해변으로 향했다. 봉포해변 여러 곳에서 낚시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끝의 큰 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손맛을 봤던 터라 그곳으로 자리를 정하고 낚시를 준비했다. 해변을 비치는 가로등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모두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저 멀리 수평선 끝에 고깃배가 붉을 밝히고 조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곱은 손으로 갯지렁이 한 마리를 달고 힘차게 캐스팅하니 녹색 줄보기 캐미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원투 낚시인들은 이 순간이 가장 기쁘다. 바다로 떨어진 미끼를 어떤 고기가 물지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오니 체감온도는 대략 영하 10도는 되는 듯했다. 밀어닥치는 파도에 낚싯줄이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 하며 초릿대 끝이 리듬을 탄다. 입질이 없을 것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초릿대 바라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이것이 원투낚시의 참맛이다.
낚시를 잘 모르는 이들은 낚시를 던져놓고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건 잠시일 뿐 그냥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거나 멍하니 입질을 기다릴 뿐이다.
새벽부터 먹이 활동을 하는 새 한 마리가 바닷속으로 자맥질을 하고 있다. 몇 번을 자맥질에도 물고기를 물고 나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영상=전수영 기자)
낚시는 이른바 운이 7 기술이 3이라는 '운칠기삼'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바늘에 맛있어 보이는 미끼를 정성스럽게 달아 던질 뿐 나머지는 그야말로 물고기 마음이다. 물론 물고기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알고 정확히 그곳에 미끼를 투척하면 확률이 좀 더 높아지긴 하지만 물고기가 어디 한 곳에만 있으랴. 그야말로 운이 좋아야 손맛을 볼 수 있는 게 낚시다. 낚시는 운 9에 기술 1 정도가 아닐까 싶다.
대략 30분 정도 지났지만 입질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미끼를 갈아야만 한다. 이미 갯지렁이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챔질을 하고 릴을 감는데 줄 감기는 소리가 맑다. 비록 바늘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릴을 감는 손놀림은 그저 즐거울 뿐이다.
또다시 통통한 갯지렁이 달아 좀 더 멀리 캐스팅했다. 대략 100m가량 날아간 것 같다. 삼각대에 낚싯대를 걸쳐 놓고 오른쪽 하늘을 바라보니 붉은 기운이 도착했을 때보다 짙어졌다. 조금만 기다리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미 해는 수평선에 걸쳐 있는 듯 날이 환해졌다. 봉포해변에서 바라본 동해 모습. (영상=전수영 기자)
참고로 봉포해변은 이글거리는 일출을 감상하기에는 좋은 곳이 아니다. 태양이 수평선 정면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1시 방향의 회센터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일출 사진을 찍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다만 잘 관리된 화장실이 회센터 뒤에 있고 해변도 깨끗해서 편리하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사물의 윤곽이 뚜렷해져 갔다. 일찍 나온 새 한 마리가 물속으로 잠수했다고 한참 후 물 위로 올라왔다. 아마도 먹이를 잡으려는 듯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리를 먹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여러 번 잠수에도 불구하고 계속 허탕만 쳤다.
미끼를 몇 번 갈고 나니 횟센터 지붕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몇몇 일출을 보러 나온 이들이 태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한겨울에 해변에서 낚시를 하는 기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 눈에는 기자가 낚시를 정말 종아하는 사람 아니면 낚시에 미친 사람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여섯 번의 미끼 교체와 캐스팅을 끝으로 짧은 2025년 첫 낚시는 무입질, 무손맛으로 끝났다. 그래도 겨울 바다를 실컷 본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또 다시 한 번 명언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피곤하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가족 모두가 일어나 있었다. 월요일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막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짐을 챙겨 일찍 나왔다. 아침 식사를 위해 미시령터널 가기 전 두부마을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최옥란 할머니 순두부'로 정했다. 그동안 여기저기 다녔던 터라 맛이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조금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차장에 차가 별로 없었다. 주차장이 널찍해 휴일에 사람이 많이 몰리더라도 주차로 인한 짜증은 덜할 듯 싶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깜짝 놀랄만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출입문 오른쪽에 커다란 장식장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 프라모델이 가득했다. 여기에 건너편 끝에도 이와 비슷한 크기의 장식장에도 프라모델이 잔뜩 놓여 있었다. 하나같이 정성스럽게 조립되고 채색돼 있는 것이 아마추어 솜씨는 아닌 듯했다.
아침으로 초당순두부, 얼큰순두부, 오징어순대를 주문했다. 이 식당은 다른 곳과 비교해 메뉴가 많은 편이다. 속초 두부마을 식당들은 초당순두부, 얼큰순두부와 비빔밥 그리고 몇 가지 전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메뉴가 다양해 선택할 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한다.
순백의 초당순두부는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았다. 담백한 두부와 국물이 은은하게 식욕을 자극해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한다. 아침마다 두부를 만드는 주인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큰순두부는 다른 곳에서 먹었던 것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얼큰함이 묵직했는데 그렇다고 텁텁하지 않아 해장하기에 그만이었다. 다른 양념으로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몇 가지 안 들어간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끌어낸 듯했다. 순두부를 무척 좋아해 순두부를 파는 식당에서 주문해 먹어본 후 텁텁함과 조미료 맛 때문에 실망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식당의 얼큰순두부는 어릴 때 먹었던 맛있는 순두부의 그 맛에 가까웠다.
오징어순대는 전날 먹었던 구구집보다는 몸통이 조금 작았다. 그래도 속은 빈틈 하나 없이 꽉 차 있어서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으면 씹기 힘들 정도로 알찼다.
짧은 1박 2일의 속초 여행은 고소한 두부와 속이 알찬 오징어순대로 마무리됐다. 참고로 속초는 이 시기 도루묵과 양미리가 많이 난다. 찬바람이 불 때가 제맛인 도루묵과 양미리를 먹기 위해서라도 속초로 떠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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